집 베란다에 동백꽃이 피었다.
언젠가 겨울에 제주도에 갔을 때,
동백꽃이 사방으로 핀 정원 같은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방문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동백꽃은 이렇게 특정 장소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집에서 보게 되니 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아빠는 은퇴 후 식물 키우기에
취미를 붙이셨다.
10년 넘게 식집사로 생활하시는 셈인데,
주로 키우는 것들은 난초이다.
난은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게 아니고,
가끔 은은한 향이 나는 정도여서
아빠처럼 가까이서 난을 대하고,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 향기도 그냥 넘기기 일쑤다.
아빠가 정성을 들여 키우는 것에 비하면
우리 가족들은 그것에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은퇴하신 아빠가 흥미를 가지고
즐거움을 느끼는 취미 생활 있으셔서
'다행이다'하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한때 난을 잘 키우면 값이 꽤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아빠에게 말해볼까도 했는데,
돈과 관련되어 아빠가 되려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어 말하지 않았다.
아빠는 난초 외에 그때그때마다
키우고 싶은 것들을 키운다.
어쩔 땐 딸기, 한라봉이 되기도 하고,
또 어쩔 땐 블루베리, 허브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시험 삼아 키우는 거라
시장에서 한뿌리 묶음을 사 오셔서
키우는 정도다.
난 집에서 그런 딸기며, 한라봉,
블루베리들이 열매를 맺는 게 신통방통했고,
맛 또한 정말 그 본연의 맛이 나서
놀라게 된다.
가족들은 난초들엔 관심이 없다가도
볕 좋은 베란다에 그런 동백이나
딸기, 한라봉, 블루베리들이 달려있으면,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뭣보다 신기한 건
오랜 기간 식물을 정성스레 키우는
찬찬한 아빠의 모습이다.
아빠는 불같은 성격이신데,
반면에 그런 반전의 모습이 있으셨다.
우리를 키울 때도 그런 맘이셨을까?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것만
봤었던 터라 의외였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었다.
한때는 아빠가 식물보다는
반려견이나 반려묘에 관심이 생겨서
집에서 키웠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한테 넌지시 말한 적도 있었다.
아빠의 대답은 “NO”였다.
동물과 인간의 주거지는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셨고,
집에서 동물을 키우면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귀여운 동물들과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얕은 기대는 접어버렸다.
오늘도 아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 날 때면 베란다로 향해
식물들의 상태를 체크하며
위치를 바꿔주고, 흙도 갈아준다.
필요한 게 있으면 당장이라도
종로에 나가서 사 갖고 오신다.
아빠를 즐겁게 하는 취미가 있어
참 다행이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그저 감사를 드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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